한국 도자사
페이지 정보
작성일 22-11-14 04:46
본문
Download : 한국 도자사.hwp
그러므로 1469년 이전에 이미 경기도 광주에 사옹원의 분원에서는 사옹원에 소속된 장인[관장]들이 중앙공급용의 정교한 백자를 전문적으로 제조하였다. 다시 말하면 1467년 4월 이후 1468년 12월 사이에 경기도 광주에 왕실용 백자를 제작하였던 분원 관요가 설치되었다.
이렇듯 1467, 68년경 관요였던 분원을 설치한 후 중앙 관요였던 분원에서의 자기제작이 백자위주로 되고 또한 백자의 생산량이 증가하였다. 왕실에서 분원을 설치하게 된 중요한 원…(skip)
설명
순서
Download : 한국 도자사.hwp( 43 )






다.
,기타,레포트
광주시 충효동가마에서 나온 「미사」명 (을미년 4월; 1475), ...
분원(분원)의 설치로 인한 분청사기의 쇠퇴광주시 충효동가마에서 나온 「미사」명 (을미년 4월; 1475), ... , 한국 도자사기타레포트 ,
한국 도자사
레포트/기타
분원(분원)의 설치로 인한 분청사기의 쇠퇴
분원(분원)의 설치로 인한 분청사기의 쇠퇴
광주시 충효동가마에서 나온 「미사」명 (을미년 4월; 1475), 「정윤이」명(정유년 윤 2월; 1477) 파편들과 「성화 정유」명(성화연간의 정유년; 1477) 분청묘지편들은 분명한 연대를 제시해 줄 뿐 아니라 조잡한 양식을 갖추고 있어 1470년대에 들어서서 분청사기의 급격한 쇠퇴를 여실히 보여준다. 그 결과 전남 광주 충효동가마를 비롯한 전국에 흩어져있는 가마에서는 더 이상 중앙공급용 도자기를 제작할 필요가 없었고, 이에 따라 지방가마들은 급격히 쇠퇴하였으며 분청사기 양식의 저질화가 가속화되었다. 그 후 예종 원년(1469) 1-3월 사이에 편찬된 『경상도속찬지리지』에 최고급 백자를 제작했던 상품 자기소가 이미 사라졌고, 그 후 1469년 완성된 『경국대전』 「공전」에 사옹원 소속 사기장인 중 경공장(경공장)에 대한 기록이 있어 당시에 이미 분원이 운영되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. 「내섬사」와 같이 중앙의 여러 관청에 도자기를 납품하였던 충효동가마가 이처럼 지방가마로 급격히 쇠퇴한 원인(原因)은 중앙관청과 왕실에 공급하기 위하여 다른 일군의 가마가 1467-1468년에 경기도 광주에서 운영되었기 때문일것이다
분원이 설치되었다고 생각되는 시기는 적어도 분원의 본청에 해당하는 사옹원이 사옹방으로 개칭되면서 녹관을 둔 1467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.